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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맥주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헤롱해 2023. 5. 18. 01:38

오늘은 아사히 맥주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히 포스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사히 맥주의 역사

 

1889년, 오사카시에서 '오사카 맥주 회사'를 설립합니다.

 

1892년, 오사카 맥주 회사에서 '아사히 맥주'를 발매합니다.

 

1906년 9월, 오사카 맥주, 에비스 맥주, 삿포로 맥주가 합병해 대일본맥주를 설립합니다. 이 합병을 주도한 인물은 '일본 맥주의 왕'이라 불리는 '마코시 쿄헤이'였습니다. 쿄헤이는 이벤트와 광고, 입소문에 의한 홍보 등 프로모션을 포함한 판매 전략의 귀재라 불렸습니다. 쿄헤이는 내각에 '국내의 과다 경쟁을 배제하고, 수출을 촉진하며, 자본의 집중을 도모하기 위해 합병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해 이를 이끌어 냈습니다. 쿄헤이는 3개의 회사를 합쳐 점유율 70% 정도로 만들고, 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독과점 형태를 이어갔습니다.

 

1943년, 2차 세계 대전 중인 일본은 전쟁 물자와 식량 확보에 어려움을 격고 맥주 원료의 수입이 힘들어 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맥주 브랜드의 사용을 폐지하고 '맥주'라는 하나의 브랜드만을 사용합니다. 아사히 맥주 브랜드도 이때 중단됩니다.

 

1949년 9월, 독과점 방지법에 의해 대일본맥주는 해체되어 '일본 맥주(현 삿포로 홀딩스)'와 '아사히 맥주(현 아사히 그룹 홀딩스)' 두 개의 회사로 분할됩니다. 각각 동일본맥주와 서일본맥주라고 불렀습니다. 이 분할을 추진한 대일본맥주의 야마모토 전무가 아사히 맥주의 초대 사장으로 취임됐기 때문에 다양한 추측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분할된 시점의 맥주 시장 점유율은 일본 맥주(삿포로 맥주)가 38.7%, 아사히 맥주가 36.1%, 기린 맥주가 25.3%로 였습니다. 1954년에는 1위가 기린 맥주, 2위가 아사히 맥주, 3위가 일본 맥주가 되었습니다. 아사히 맥주는 1960년까지 줄곧 2위를 유지했습니다.

 

1958년, 일본 최초로 캔 맥주(아사히 골드)를 발매합니다.

 

1985년, 1961년 점유율이 3위로 밀린 이후 80년대 중반에는 점유율 10%, 1985년에는 점유율 9.6%까지 떨어져 4위 산토리의 9.2%에 겨우 앞선 정도였습니다. 결국 석양맥주(유우히비루, ゆうひビール, 夕日ビール)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이는 '뜨는 해'라는 뜻인 아사히를 조롱하는 표현이었습니다.

 

1987년, 1월 아사히 슈퍼 드라이(Asahi Super Dry) 맥주를 발매합니다. 당시 새롭게 취임했던 사장은 아사히 주력 맥주의 맛을 변경하기로 결심하고 도쿄와 오사카에서 2회에 걸쳐 소비자의 미각 선호도를 조사합니다. 놀랍게도 그 결과는 소비자는 쓴맛 뿐만 아니라 입에 포함되었을 때의 감칠맛(고쿠, コク)과 목 넘김이 편안한 맛(키레,キレ)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되었던 좋은 맥주의 맛이 '쓴맛과 풍미가 강하고 무거운 맥주'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사히 슈퍼 드라이는 발매 당시 언론의 냉정한 취급을 받았지만 출시 후 수도권 한정으로 발매하려던 계획을 빠르게 수정하여 전국 발매가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아사히 슈퍼 드라이는 그해 닛케이 신문에서 뽑은 히트 상품이 되었고, 이듬해인 1988년에는 삿포로 맥주를 제치고 점유율 2위를 차지하였으며, 1998년에는 결국 맥주 분야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989년, 아사히 슈퍼 드라이의 인기에 힘입어 회사명을 '아사히 맥주 주식회사'로 변경하고 창업시부터 판매되었던 '아사히 맥주(원본)'를 판매 종료하게 됩니다.

 

2011년, '아사히 그룹 홀딩스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고 주류 사업을 자회사인 '아사히 맥주 주식회사'에 승계해 지주 회사로 바꿉니다.

 

2016년, 아사히 맥주는 7년 연속 점유율 1위를 차지합니다. 아시히 맥주가 39.0%이고 2위는 기린 맥주는 32.4%. 3위인 산토리는 15.7%, 4위인 삿포로 맥주는 12.0%, 마지막으로 오리온은 0.9%를 차지하였습니다.

 

아사히 맥주는 맥주 애호가들이 보기에는 밍밍하기 짝이 없는 싱거운 맥주에 가깝습니다. 맥아의 비율도 낮아 나머지는 전분이나 옥수수로 채웠습니다. 맥주순수령으로 따지자면 영 엉망인 맥주입니다. 중세 독일이라면 자신이 만든 맥주를 들고 산으로 들어가 스스로 모두 마셔야만 하는 형벌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드라이라는 용어도 단맛이 없고 싱겁다는 것을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엔젤링은 아예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소비자가 좋은 맥주를 찾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아사히의 마케팅은 대단히 적중했습니다.